📌 지하 왕국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세 가지 사유
- 냉혹한 권력과 명령 앞에서도 끝내 무릎 꿇지 않고 저항했던 어린 영혼의 순수함
-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동화를 선택해야만 했던 슬픈 도피
- 살아남기 위해 비겁하게 순응하며 살아온 내 지난날의 타협들을 향한 뼈아픈 반성
사회라는 거대한 규칙과 조직의 위계 앞에서, 내 양심과 어긋나는 지시를 받고도 그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무력한 하루를 보낸 늦은 밤이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라는 거창한 방패막이 뒤에 숨어, 부당함을 보면서도 침묵하고 만 제 비겁한 처세술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쓴 침만 연거푸 삼켰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불의에 적응하고 영혼의 순결함을 조금씩 깎아내며 마취되어 가는 과정일 뿐인가 하는 자조 섞인 한탄이 밀려왔습니다.
가슴속에 메마른 모래바람이 부는 것 같던 그 순간, 불현듯 서재 한구석에 꽂혀 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개봉했던 2000년대 중반, 이십 대였던 저는 이 영화를 포스터 문구처럼 그저 환상적인 판타지 모험극으로 착각하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운 살점 튀는 고문과 잔혹한 파시즘의 폭력, 기괴한 괴물들의 형상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하지만 사십 대의 나이가 되어 인간의 존엄성이 현실의 계산과 권력 앞에서 얼마나 손쉽게 짓밟히는지를 뼈저리게 목격해 온 지금, 이 영화는 단순한 다크 판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잿빛 폭력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존엄과 순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한 연약한 영혼의 거룩한 저항기였으며, 현실에 굴종하며 닳고 닳아버린 제 양심의 뺨을 서늘하게 후려치는 아픈 거울이었습니다.
차가운 군화 소리와 시계 초침, 괴물보다 잔혹한 어른의 세계
영화 속 비달 대위는 델 토로 감독이 창조한 그 어떤 기괴한 크리처보다 섬뜩한 존재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면도칼 같은 냉혹함,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품에 쥐고 초침 소리에 맞춰 타인을 재단하는 그의 강박은 전체주의적 폭력의 화신 그 자체입니다. 무고한 사냥꾼 부자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잔인하게 학살하고, 자신의 아들이 태어날 시간만을 계산하는 그의 모습은 피가 통하지 않는 기계 장치를 연상시킵니다.
그 무자비한 얼굴을 보며, 저는 문득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메마른 단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숫자로 환산되는 실적,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효율성, 윗사람의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세상의 수많은 시스템들이 실은 비달 대위의 군화 발자국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모릅니다. 온기와 공감이 거세된 그 삭막한 질서 속에서, 우리는 생존이라는 명목하에 매일 타인의 고통을 묵인하며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명령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은 어른의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기를 포기한 자들이 선택하는 가장 비겁한 면죄부다."
고문을 거부하고 시민군을 돕다 총살당하기 직전, "이유 없이 복종하는 것은 당신 같은 군인들이나 하는 짓이오"라고 일갈하던 의사의 담담한 한마디에 제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밥줄이 끊길까 두려워 고개를 조아렸던 제 수많은 침묵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핑계 뒤에 숨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비달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분필로 문을 그리던 소녀, 도피가 아닌 가장 처절한 투쟁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병들어 가고, 새아버지인 비달 대위의 살기등등한 공포가 집안을 감돌 때, 어린 오필리아는 마법의 분필로 벽에 문을 그려 지하 왕국으로 향합니다. 괴기스러운 요정 판을 만나고, 진흙투성이 두꺼비의 뱃속에서 열쇠를 꺼내며, 손바닥에 눈이 달린 창백한 괴물 페일맨의 식탁에서 도망치는 세 가지 과업을 수행합니다.
현실의 지옥을 견뎌내기 위해 쌓아 올린 환상의 요새
누군가는 이것을 아이의 헛된 망상이자 현실 도피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오필리아가 마법책을 펼치고 분필을 쥘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의 끔찍한 총성과 피비린내를 견뎌내기에 열두 살 소녀의 어깨는 너무나 가냘팠습니다. 아이에게 판타지는 나약한 환각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잔인한 현실에 온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나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축조해 낸 마지막 존엄의 요새였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제 유년의 기억 속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거친 고성과 가정의 불화, 학교의 차가운 냉대 속에서 혼자 방구석에 웅크린 채 책 속의 모험과 공상으로 숨어들었던 시린 계절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백일몽이 없었더라면 저 역시 그 모진 시간들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필리아의 떨리는 손끝에서 피어난 환상은, 짓밟힌 영혼이 숨을 쉬기 위해 내지른 가장 눈물겨운 심폐소생술이었습니다.
미로의 중심에서 거부한 칼날, 그리고 피로 물든 승리
영화의 마지막, 반군들의 총격전 속에서 갓 태어난 동생을 품에 안고 미로의 중심부로 도망친 오필리아는 마지막 시험에 직면합니다. 판은 지하 왕국의 문을 열기 위해 순결한 아기의 피 몇 방울이 필요하다며 칼을 건넵니다. 비달 대위의 군화 소리가 미로 너머에서 다가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영원한 지하 왕국의 공주가 될 수 있는 기회 앞에서도 오필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동생을 해칠 수는 없어요."
뒤쫓아온 비달 대위의 총구가 불을 뿜고, 차가운 미로의 석판 위로 오필리아의 붉은 피가 흘러내릴 때 저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삼켜야 했습니다. 소녀는 살기 위해, 혹은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 타인의 피를 흘리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약육강식 논리와 비열한 타협을 완전히 거부하고, 무고한 생명을 지켜냄으로써 완성한 가장 숭고한 도덕적 승리였습니다.
숨이 멎어가는 소녀의 눈앞에 마침내 황금빛 궁전이 펼쳐지고, 왕과 여왕, 그리고 백성들의 박수를 받으며 왕좌에 오르는 오필리아의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그것이 죽어가는 아이의 뇌리에 스친 마지막 환각이든, 영혼의 진정한 구원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흙바닥에 쓰러진 작은 아이의 입가에 맺힌 희미한 미소는, 비정한 세상이 결코 빼앗지 못한 마지막 순수의 불꽃이었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구슬픈 자장가 선율이 흘러나올 때, 저는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제 부끄러운 손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얼마나 비겁하게 고개를 숙이며 살아왔던가. <판의 미로>는 잔혹한 동화의 껍질을 빌려, 현실의 칼바람 속에서 메말라가던 제 영혼에 뜨거운 눈물을 떨구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잔인하고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내 마음속 가장 연약한 온기와 양심만큼은 결코 팔아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 처연한 걸작 앞에서 조용히 새겨 봅니다.
💬 차가운 세상 속에서 여러분이 끝내 지켜내고 싶은 '순수'는 무엇인가요?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나만의 마지막 선이나, 어릴 적 나를 지탱해 주었던 소중한 환상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 여러분만의 아프고도 깊은 생각을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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