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위.옥상 위 춤사위 뒤편에 숨은 부끄러움: 영화 <액트 오브 킬링>과 마주한 내 솔직한 고백



📌 스크린의 충격을 통과하며 길어 올린 세 가지 사유

  •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가장 기괴하고 끔찍한 방어기제 직시
  • 악이란 특별한 괴물이 아닌, 일상적인 타협과 침묵 속에서 번식한다는 뼈아픈 자각
  • 살육의 현장에서 터져 나온 노인의 헛구역질이 내 무뎌진 양심에 던진 서늘한 경고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의 원칙을 꺾고, 그럴듯한 핑계로 비겁한 침묵을 정당화했던 기억이 유독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밤이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편리한 위안 뒤로 숨어버리는 제 자신의 모습이 문득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합리화라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무서운 독약인지 자각하던 순간, 서재 구석에 오래도록 모셔두기만 했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저는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100만 명 규모의 대학살, 그리고 그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처벌받기는커녕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자신들의 살인을 영화로 재연한다는 설정 자체가 주는 묵직한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제게 역사적 비극이란 단죄되어야 할 과거의 사건이었고, 정의가 승리하지 못한 채 가해자가 떵떵거리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모순과 불의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겪어내고, 우리 안와 밖의 위선을 더 깊이 헤아리게 된 마흔의 나이에 마주한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역사 기록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끔찍한 과오를 잊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고 잔인한 자기기만의 성을 쌓아 올리는지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거울이었으며, 제 안의 안일한 도덕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충격의 기록이었습니다.

자랑스럽게 재연된 살육, 그리고 인간의 파렴치한 방어기제

영화의 중심인물인 안와르 콩고는 과거 철사로 사람들의 목을 졸라 죽이던 학살의 주역입니다. 그런데 그는 카메라 앞에서 참회하기는커녕,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피를 덜 흘리는 방식으로 사람을 죽였는지를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떠벌립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던 미국 갱스터 영화나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분장하고 노래하며 당시의 학살을 흥겹게 재연해 냅니다.

피가 튀는 잔혹한 범죄를 예술적인 유희로 둔갑시키는 그 뻔뻔한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곤혹스러웠습니다. 분노를 넘어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토록 무감각하게 자신의 죄악을 전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과장된 춤사위와 유쾌한 미소는 실은 자신이 저지른 지옥 같은 기억에 집어삼켜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쳐놓은 처절하고 기괴한 방어막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스스로를 괴물로 인정할 수 없는 인간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세상 전체를 미치광이의 무대로 바꾸어버린다."

그 잔혹한 연극을 보며 문득 제 삶의 작은 틈새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고 포장하거나, 이기적인 선택을 해놓고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며 환경 탓으로 돌려버렸던 제 부끄러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와르 콩고의 거대한 광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자기합리화라는 칼날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도달하는 가장 흉측한 종착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늘해졌습니다.

역할이 바뀌는 순간 깨어진 가해자의 견고한 환상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결정적인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은,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학살했던 피해자의 역할을 직접 맡아 목에 철사를 감는 장면을 연기할 때였습니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명령을 내리고 살인을 지휘할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공포와 질식의 감각이, 비로소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숨이 턱 끝까지 막혀오는 순간 그의 온몸을 덮쳐옵니다.

"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촬영을 중단하고 멍하니 주저앉아 감독에게 "그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존엄성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 같아"라고 묻는 안와르의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쐐기를 박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영화를 찍는 것이지만 그들은 진짜 죽어간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완벽하게 무감각했던 한 영혼에 비로소 자각의 칼날이 꽂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감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상대방이 겪었을 무력감과 공포를 내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 타인의 억울함에 눈을 감고 살았던 시간들이, 결국은 내 영혼을 얼마나 메마르고 괴물처럼 변하게 만들고 있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옥상 위의 헛구역질, 마침내 육체가 뱉어낸 진실

영화의 종막, 안와르 콩고는 영화 초반 춤을 추며 사람을 죽이는 시늉을 했던 바로 그 건물의 옥상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전의 당당하고 유쾌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잿빛으로 변한 얼굴로 난간을 잡고 서 있던 그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끝없는 헛구역질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토사물조차 나오지 않는 빈 위장을 쥐어짜며 켁켁거리는 그 메마른 소리는 적막한 밤공기를 찢어놓았습니다.

그 처절한 헛구역질을 지켜보며 저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혀야 했습니다. 그것은 법정도, 사회적 처벌도 해내지 못했던 양심의 심판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승리자라 자부하고, 입으로는 정의로운 애국자라 거짓말을 일삼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그 피비린내를 그의 육체는 결코 잊지 못하고 몸 밖으로 밀어내려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속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세상의 찬사를 받는다 한들, 내가 저지른 비겁함과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내 영혼의 밑바닥에 오물처럼 가라앉아 언젠가는 구역질이 되어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옥상 위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오던 안와르의 초라한 뒷모습은,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린 성이 얼마나 비참하게 붕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준엄한 도덕적 판결이었습니다.

긴 정적과 함께 영화가 끝나고 불 꺼진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가슴속에 깊은 한숨과 서늘한 경각심이 교차했습니다. 편안함에 취해 불의를 모른 척하고, 내 이익을 위해 사소한 양심을 팔아넘기던 삶의 태도를 멈추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먼 나라의 낯선 학살극이 아니라, 매 순간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자기합리화의 싹을 경계하고 타인의 아픔 앞에 정직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일깨워준 영혼의 충격요법이었습니다.

💬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자기합리화'의 기억이 숨어있나요?

상황이라는 핑계 뒤로 숨어 누군가의 상처를 외면했거나, 나를 지키기 위해 비겁한 침묵을 선택했던 뼈아픈 순간이 있으신가요?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한 걸음 더 정직한 어른으로 나아가게 했던 여러분만의 생각을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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