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성공 뒤에 남겨진 지독한 공허: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며 돌아본 내 욕망의 끝



📌 치열한 삶의 궤적 끝에서 건져 올린 세 가지 사유

  •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맹목적인 생존 본능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들
  • 신뢰와 온기를 지불하고 사들인 성공이 왜 결국 지독한 고립으로 귀결되는가
  • 거대한 대저택과 차가운 볼링장에서 마주한 한 인간의 파멸이 내게 던진 묵직한 경고

한 주 내내 긴장의 연속이던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금요일 심야였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도 머릿속은 온통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강박과 끝없는 비교 의식으로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습니다. 성과를 증명해 내야만 살아남는 일터의 전쟁터에서, 저는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들을 동료가 아닌 경쟁자나 넘어야 할 장애물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쉽게 잠들지 못해 어두컴컴한 거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찾아 튼 영화가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였습니다. 젊은 날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메마른 사막을 뚫고 솟구치는 검은 석유의 장엄한 시각적 압도감이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기 어린 명연기만을 감탄하며 소비했습니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겨 사회생활의 신산함을 겪을 만큼 겪어낸 지금, 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제 마음속 밑바닥에 숨겨둔 서늘하고 추악한 욕망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던 집념, 그리고 내 안의 불안

영화의 초반 15분여 동안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거친 숨소리와 곡괭이질 소리만이 어둠을 가릅니다. 다니엘 플레인뷰가 다리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도 기어가며 은을 쥐고 살아남는 그 독기 어린 첫 장면을 보며 가슴 한편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증오 이전에, 세상에 나 혼자 버려져 있다는 극도의 고립감과 가난에 대한 원초적 공포에서 비롯된 발버둥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십 대와 삼십 대의 길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는지 떠올랐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사회에 던져졌을 때, 내가 넘어지면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저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었습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마음이 부서져도 내색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제 지난날의 시간들이 플레인뷰의 흙투성이 얼굴과 겹쳐 보여 숨이 막혀왔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강인함의 증거가 아니라,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쌓아 올린 가장 단단한 감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집념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투쟁은 어느덧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병적인 경쟁심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읊조리던 플레인뷰의 고백은, 겉으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남의 실패를 은근히 안도하던 제 부끄러운 이면을 매섭게 질타하는 칼날 같았습니다.

핏줄과 신뢰마저 거래의 도구로 전락할 때

다니엘 플레인뷰는 양아들 H.W.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가족적인 사업가'라는 가면의 장식품으로 이용했습니다. 아이가 시추 현장의 사고로 청력을 잃었을 때, 플레인뷰의 눈에 스친 것은 아들의 고통에 대한 비통함보다 사업의 차질과 쏟구치는 석유의 황홀경이었습니다. 기차에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던 비정한 뒷모습을 보며 저는 치밀어 오르는 환멸과 함께 묘한 자괴감을 삼켜야 했습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해 온 관계들

과연 나는 그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일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가족의 목소리를 건성으로 듣고, 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랜 인연들의 연락을 서서히 줄여나갔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의 성과와 효율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방패 삼아, 정작 지켜내야 할 인간적인 온기를 내 손으로 잘라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플레인뷰는 모든 사람을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존재로 단정 짓고 스스로를 완벽히 격리합니다. 가짜 동생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배신당했을 때 그가 느낀 배신감과 살의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가 치러야 하는 가장 가혹한 대가였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결국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스크린 너머의 메마른 대지를 타고 제 메마른 마음에 묵직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차가운 볼링장, 마침내 흘려버린 자조의 눈물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된 플레인뷰는 그토록 갈망하던 부와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대저택의 거대한 공간, 그러나 그곳에는 온기라고는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술에 절어 혼자만의 저택 지하 볼링장에서 널브러져 있는 그의 모습은 승리자의 위용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버림받은 패잔병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위선적인 종교인이자 자신의 오랜 숙적이었던 일라이가 찾아와 굴복을 청할 때, 플레인뷰가 터뜨리는 광기 어린 포효와 폭력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의 밀크셰이크를 마셔버렸다!(I drink your milkshake!)"라고 조롱하며 끝내 그를 쓰러뜨린 후 뱉어내는 마지막 대사, "다 끝났다(I'm finished)"라는 말 한마디. 그 허탈한 종말 앞에서 저는 깊은 탄식과 함께 자조 섞인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옥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종말의 고백이었습니다. 남을 굴복시키고 정상에 오르면 완벽한 자유와 평안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던 한 남자의 최후는 지독한 허무와 피비린내뿐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집착하고 아등바등 매달려온 성공이라는 허상의 끝도 결국 저런 텅 빈 공간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며 영화가 끝나고 정적만이 남았을 때, 저는 멍하니 닫힌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지난 한 주의 피로와 타인을 향해 세웠던 날카로운 가시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를 절감했습니다.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타인을 이겨서 쟁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내 곁의 사람들과 나누는 온기와 신뢰라는 사실을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서늘한 파멸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욕망의 갈증이 흐르고 있나요?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리다 문득 멈춰 섰을 때, 지독한 공허함이나 서글픔을 마주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인생에서 끝까지 잃지 않고 지켜내고 싶은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댓글로 편안하게 생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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