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이면을 응시하며 남긴 세 가지 사유
-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는 오만이 무너져 내린 순간 마주한 서글픈 깨달음
- 완벽해 보이던 어른들의 일상 뒤편에 웅크린 고독과 해결되지 않는 결핍의 무게
-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담아내던 어린아이의 렌즈가 건네는 가장 담담한 위로
한 해의 중반을 넘어서던 어느 늦은 일요일 밤, 텅 빈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일터와 인간관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오해와 다툼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습니다. 상대방이 왜 내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지, 왜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는지에 대한 원망과 피로가 턱 끝까지 차올라 숨이 턱턱 막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 마음속 갑갑한 응어리를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싶어 서가 한편에 조용히 꽂혀 있던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꺼내 재생했습니다. 거의 세 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이지만, 마음이 휘청거릴 때마다 본능적으로 이 영화의 잔잔하고 묵직한 공기를 찾게 됩니다. 이십 대 시절 처음 접했을 때의 이 영화는 그저 한 평범한 대만 중산층 가족의 시시콜콜한 일상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구조 속에서, 왜 이토록 많은 인물의 사소한 불행을 담담하게 늘어놓는지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십 대의 길목에 들어서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일터에서의 타협, 그리고 관계의 피할 수 없는 피로를 온몸으로 겪어낸 지금, 화면 속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확신들이 실은 얼마나 얄팍한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했는지를 고요하게 질타하는 거울이자, 길을 잃고 방황하던 제 서글픈 영혼을 보듬는 깊은 탄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 아이, 그리고 나의 닫힌 시야
영화 속에서 가장 어린 주인공 양양은 작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며 끊임없이 어른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사람들은 왜 자꾸 앞모습이 아닌 볼품없는 뒤통수만 찍느냐고 아이를 타박하지만, 양양은 너무나 천진하고도 명료한 목소리로 반문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앞만 보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보지 못하는 걸 내가 보여주려고 찍는 거예요."
그 어린아이의 대사를 다시 마주한 순간, 가슴을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살아오면서 저는 늘 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맹신해 왔습니다. 내가 겪은 억울함, 내가 쏟아부은 노력, 내가 받은 상처만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타인의 고통과 무게는 너무나 쉽게 간과했습니다. 내 앞모습을 그럴듯하게 치장하느라 바빠, 정작 내 등 뒤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조차 돌아보지 못했던 제 오만함이 부끄럽게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뒷모습조차 평생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양양이 건네는 사진 속 뒷모습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무방비합니다. 표정으로 거짓말을 지어낼 수도 없고, 긴장을 풀고 서 있는 사람들의 등 뒤에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직장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던 제 자신의 굽은 등, 가족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 웃어 보였지만 돌아선 순간 새어 나오던 깊은 한숨이 그 흑백 사진들 속에 겹쳐 보여 눈시울이 시큰해졌습니다.
과거를 다시 산다고 해서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버지 NJ는 사업차 떠난 도쿄에서 수십 년 만에 옛 첫사랑과 재회합니다. 젊은 시절의 선택을 후회하며, 만약 그때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더 행복하고 찬란하지 않았을까 하는 오랜 환상을 품은 채 두 사람은 낯선 도시의 거리를 함께 걷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저 역시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수많은 '만약에'라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쿄의 밤거리에서 돌아선 어른의 체념
그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직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덜 피곤하고 더 풍요로웠을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지나온 길에 대한 짙은 미련에 사로잡혀 현재의 결핍을 과거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하지만 호텔 방 문앞에서 첫사랑을 배웅하며 선을 넘지 않고 현실로 돌아온 NJ는 아내에게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다시 한번 그 시절을 살아볼 기회가 있었어. 그런데 깨달았지. 다시 산다고 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걸."
그 담담한 체념의 고백은 과거의 후회에 얽매여 있던 제 가슴을 깊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늘 겪어보지 않은 다른 선택지에 환상을 덧칠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인생에는 그 나름의 결핍과 아픔, 피할 수 없는 고독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남겨진 불완전한 현실을 온전히 끌어안는 것만이 어른이 마주해야 할 진짜 용기임을 영화는 서늘하게 일러줍니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배운 삶의 유한함과 화해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할머니의 곁에서 가족들은 차례로 말문을 닫습니다.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자신의 텅 빈 일상이 부끄러워 산속 절로 도망친 어머니 민민, 죄책감에 짓눌려 눈물만 흘리는 딸 팅팅의 모습은 소통이 멈추어버린 현대 가족의 적나라한 단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영정 앞에 선 어린 양양의 편지 낭독은 그 모든 단절과 슬픔을 한순간에 무장해제 시킵니다.
"할머니, 저도 이제 다 컸나 봐요. 저도 이제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편지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참았던 눈물을 조용히 흘렸습니다. 삶이란 대단한 성공이나 극적인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결핍을 가만히 헤아려주고 내 작은 온기를 보태어 주는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타이틀처럼 우리는 하나를 알고 있지만 결코 둘을 다 알지 못하는 반쪽짜리 존재들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타인의 숨겨진 슬픔과 보이지 않는 진실이 언제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고 나니,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인간관계의 서운함과 삶에 대한 조급함이 새벽안개처럼 서서히 걷혀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 화면이 검게 물들고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저는 차분해진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지친 출근길에 오르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비틀거리겠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거친 말 뒤에 숨겨진 서툰 뒷모습을, 그리고 내 지나온 선택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작은 여유를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거대한 인생의 거울 앞에서 비로소 선물 받았습니다.
💬 여러분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삶의 '뒷모습'은 무엇인가요?
내 생각과 기준에 갇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숨겨진 무게를 놓치고 지나쳤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과거의 후회를 내려놓고 지금 내 곁의 불완전한 삶을 보듬게 되었던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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