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위.마흔의 길목에서 다시 마주한 리우의 골목길: 왜 <시티 오브 갓>은 여전히 내 등을 서늘하게 할까



📌 먼지 날리는 빈민촌의 골목에서 건져 올린 세 가지 사유

  • 환경이라는 거대한 중력과 파괴적인 굴레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선택의 무게 직시
  •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휘두르는 대신 나만의 시선과 도구를 쥐어본 결단
  • 끝없는 경쟁과 세속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영혼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다짐

사회라는 거대한 정글 한가운데서 매일 치열하게 부딪히고 경쟁하며 살아온 지 어느덧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뒤처지고,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밀려날 것만 같은 살벌한 긴장감이 일상을 지배할 때마다, '결국 세상이란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굴러가는 비정한 전쟁터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어느 피로한 늦은 밤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거칠어지고 냉정해져 가는 제 모습에 문득 낯선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그 삭막한 불안을 달래고자 어두운 거실에서 다시 꺼내 튼 작품이 바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걸작 <시티 오브 갓(City of God)>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십 대의 젊은 날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와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저는 화면을 쉴 새 없이 쪼개는 현란한 교차 편집, 쌈바 리듬과 어우러진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그리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의 충격적인 총격전에 넋을 잃었습니다. 감각적인 연출과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에 감탄하면서도, 그저 먼 지구 반대편 무법지대의 기상천외한 범죄 활극 정도로만 영화를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사십 대의 나이가 되어 삶의 척박한 터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타협해 가는지, 그리고 주어진 환경의 무게를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뼈를 깎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하게 된 지금, 다시 마주한 리우의 골목길은 전혀 다른 통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지옥 같은 생존의 굴레 속에서 영혼을 팔아넘기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한 청년의 처절한 투쟁기였으며, 세상의 거친 흐름에 휩쓸려가던 제 안일한 태도를 가차 없이 흔들어 깨우는 서늘한 죽비였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아이들: 환경이라는 거대한 중력과 파멸의 유혹

영화 속 '신의 도시'라 불리는 빈민촌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흙먼지 날리는 골목에서 축구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총을 쥐고 마약을 배웁니다. 살인과 약탈이 일상인 그곳에서 권력을 쥐는 유일한 방법은 남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 것뿐입니다. 리틀 제(제 페케뇨)로 대표되는 어린 갱단들은 상대를 짓밟고 공포를 심어주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무자비한 광기 속으로 질주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차가운 권총을 보며, 저는 낯 뜨거운 기시감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물리적인 총성만 없을 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역시 끝없는 성과와 비교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무기를 쥐고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남들이 가는 독한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독기를 품었던 제 부끄러운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주변 환경이 삭막하다고 해서 나까지 삭막한 괴물이 되어야 할 필연은 없다. 진정한 파멸은 세상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그 어둠에 영혼을 동화시키는 순간 시작된다."

도망치면 잡히고 멈추면 죽는다는 영화의 첫머리 독백처럼, 시스템의 잔인한 압박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폭력적인 방식에 굴복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광기의 질주 끝에 남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어린 총잡이들의 손에 비참하게 쓰러져가는 허망한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피비린내 나는 골목길을 통해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방아쇠 대신 셔터를 쥔 손: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다

그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 한가운데서 주인공 로켓(부스카페)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 그는 싸움에 재능이 없고, 사람을 해칠 만큼 독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골목의 광기에 물들지 않는 맑은 눈과, 세상의 진실을 온전히 바라보고자 하는 소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손에 총을 쥐고 서로의 숨통을 노릴 때, 로켓은 낡은 중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렌즈 너머로 그 혼돈의 순간들을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파괴의 도구를 거부하고 관찰자의 자리를 지켜낸 용기

총격전이 벌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던 로켓의 떨리는 손가락을 보며, 저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제 삶의 태도를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거칠고 탁할지라도, 내가 쥐어야 할 도구는 남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내 고유한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도구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거친 생존 방식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셔터를 누르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로켓의 태도는 제게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독해지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약삭빠르게 처신하지 못해 뒤처지는 것 같아 자책하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탁한 물결에 오염되지 않고 나만의 정직한 시선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저항임을 화면 속 작은 카메라가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암실에서 피어난 흑백의 인화지: 진실을 딛고 걸어 나오는 삶

신문사 암실의 붉은 불빛 아래서, 약품에 담긴 인화지 위로 갱단의 참혹한 실태와 경찰의 부패를 고발하는 사진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해방감을 안겨줍니다. 로켓은 갱단의 보복이 두려워 사진을 숨기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신문 1면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보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카메라를 통해 지옥 같은 도시의 담장을 넘어 바깥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진짜 힘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 리틀 제의 시신을 뒤로한 채 또 다른 어린아이들이 총을 쥐고 새로운 지배자가 되겠다며 골목을 누비는 절망적인 순환 속에서도, 로켓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묵묵히 그 거리를 걸어 나옵니다. 낡은 신문사의 정식 수습기자 자리를 얻어내며, 지옥의 중력을 털어내고 마침내 자신의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그의 맑은 눈빛을 보며 저는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습니다.

진정한 구원이란 세상을 하루아침에 유토피아로 바꾸는 거창한 혁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주변이 진흙탕일지라도 내 발걸음만큼은 맑은 곳을 향해 디디려 애쓰고, 부조리한 광풍에 내 영혼을 내어주지 않은 채 나만의 성실한 기록을 남겨가는 일. 로켓이 거친 빈민촌의 골목길을 무사히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힘이 세서가 아니라, 끝끝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온기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엔딩 자막이 오르고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저는 제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볼펜과 노트북을 가만히 어루만졌습니다. 내일이면 또다시 치열한 생존의 소음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일터로 걸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친 세상의 방식을 무작정 흉내 내며 괴물이 되려 애쓰지 않으려 합니다. 비록 서툴고 느릴지라도, 내 자리에서 정직한 셔터를 누르듯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며 내 안의 인간다움을 끝끝내 지켜내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시티 오브 갓>의 그 치열했던 골목길 앞에서 깊이 새겨 봅니다.

💬 각박한 생존의 현장에서 끝내 내려놓지 못한 '나만의 도구'는 무엇인가요?

치열한 경쟁과 삭막한 현실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독해지는 대신, 스스로의 소신과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붙잡았던 나만의 방식이 있으신가요? 방아쇠 대신 카메라를 쥐었던 로켓처럼, 거친 세상을 버텨내며 나를 지켜냈던 여러분만의 솔직한 이야기와 단상을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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