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늘한 관음의 렌즈 너머에서 건져 올린 세 가지 사유
- 완벽하고 평온해 보이는 일상을 단숨에 뒤흔든 기억의 균열과 감춰둔 과거의 무게
- 가해자로서의 기억을 편리하게 지워버린 채 피해자 행세를 일삼는 어른의 이기심 직시
- 끝내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 카메라가 안락한 안방의 나에게 던진 서늘한 도덕적 심판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성과를 쌓고, 겉으로는 누구 부러울 것 없이 단정하고 안정된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하던 어느 늦은 가을밤이었습니다.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던 중,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세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내가 누리는 이 안락함과 고상한 품격은 과연 온전히 나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일까, 혹여 누군가의 희생이나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작은 거짓말들을 짓밟고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자문이었습니다.
그 서글프고도 묵직한 가책을 떨쳐내려 책장 구석에 꽂혀 있던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Caché)> DVD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 영화가 개봉했을 무렵, 이십 대의 길목에 서 있던 저는 이 작품을 그저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를 쫓는 서스펜스 스릴러로만 소비했습니다. 미동도 없이 집 외관을 비추는 정적인 롱테이크에 답답해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명확한 범인을 밝혀주지 않은 채 관객을 농락하듯 끝나버리는 불친절함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하지만 사십 대의 나이가 되어 삶의 수많은 국면에서 내 안위를 위해 슬그머니 눈을 감거나, 과거의 비겁했던 선택들을 그럴듯한 기억의 포장지로 덮어버린 경험들을 겪어낸 지금, 화면 속 조르주의 공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미스터리 수사극이 아니라, 스스로 결백하다고 굳게 믿어온 부르주아적 위선과 망각의 성벽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가장 무자비한 도덕적 칼날이었으며, 식은땀을 흘리며 내 과거를 되짚게 만든 참회의 기록이었습니다.
현관 앞에 배달된 과거: 안전지대를 파괴하는 관음의 시선
문학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식인 조르주와 출판사에 다니는 아내 안느의 집 문앞에 어느 날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됩니다. 테이프 속에는 아무런 사건도 없이 오직 그들의 집 외관만을 두 시간 넘게 묵묵히 응시하는 건조한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나 협박 편지 하나 없지만, 누군가 자신들의 사적인 안식처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부의 견고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서늘한 영상을 지켜보며 저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현관문을 닫아걸면 바깥세상의 모든 위험과 책임으로부터 안전하게 차단되었다고 믿는 안온한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테이프는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과거에 저지른 과오와 타인에게 남긴 상처까지 깨끗이 차단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익명으로 전달되는 피 묻은 닭 그림과 낡은 기억의 단편들은, 조르주가 평생에 걸쳐 봉인해 두었던 어두운 기억의 서랍을 억지로 비틀어 열어젖힙니다.
"인간은 자신이 입힌 상처는 쉽게 잊어버리면서도, 그 상처가 되돌아와 나를 찌르려 할 때는 가장 억울한 피해자의 가면을 집어 든다."
저 역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순간 편리한 망각을 선택해 왔던가요. 유년 시절 친구에게 던졌던 무심한 조롱, 학창 시절 누군가를 따돌림의 구석으로 몰아넣고도 '어린 날의 철없는 장난'이라 치부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조르주가 테이프를 보며 느끼는 극도의 신경질과 공포는, 정체불명의 발신자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지독한 죄책감의 망령을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낡은 아파트의 비극, 가해자가 마주한 침묵의 참상
테이프의 단서를 따라 찾아간 파리 외곽의 허름한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조르주는 어린 시절 자신의 집에 입양될 뻔했던 알제리계 소년 마지드를 마주합니다. 과거 여섯 살이던 조르주는 부모의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 마지드가 피를 토했다는 거짓말을 지어내고, 닭의 목을 베게 만들어 그를 고아원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수십 년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재회한 자리에서도, 조르주는 사과는커녕 자신이 협박받고 있다며 마지드를 향해 삿대질과 분노를 쏟아붓습니다.
단 한마디의 경고도 없이 뿜어져 나온 피
그리고 다시 찾아간 그 좁은 방에서, 마지드는 조르주를 앉혀두고 "당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꼭 보길 바랐소"라는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단숨에 그어버립니다. 어떠한 전조나 극적인 배경음악도 없이 벽면을 붉게 물들이며 쏟아지던 그 선혈의 순간, 저는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비명을 삼키며 소파에서 굳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법으로도, 도덕으로도 심판할 수 없는 부르주아의 단단한 위선에 온몸으로 던진 가장 처절하고 돌이킬 수 없는 침묵의 낙인이었습니다. 아무리 발뺌하고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려 해도, 그 피비린내만큼은 조르주의 영혼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없게 박제되어 버린 것입니다. 내 안락함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해 놓고도 '그땐 너무 어렸다'고 뻔뻔하게 변명하던 어른의 오만이 처참하게 도륙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수면제를 삼키고 커튼을 닫아도 지워지지 않는 응시
피투성이가 된 현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조르주의 행동은 기괴할 정도로 소름이 돋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채 영화관으로 숨어들어가 시간을 때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두꺼운 암막 커튼을 빈틈없이 닫아겁니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삼킨 뒤 옷을 다 벗고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씁니다. 세상의 모든 시선과 진실을 차단한 채 다시 영원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도망치려는 비열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웅크린 실루엣을 바라보며 저는 견딜 수 없는 서글픔과 자괴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치명적인 잘못과 마주했을 때 진정한 반성과 속죄의 길을 걷기보다, 저렇게 커튼을 닫고 알약을 삼키며 '없었던 일'로 묻어두려 하지 않았던가요. 조르주의 그 비겁한 등판은 내 잘못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 늘 상황과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던 제 나약한 내면의 민낯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다시 한번 묵묵하게 학교 앞 계단을 롱테이크로 비춥니다. 하교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조르주의 아들과 마지드의 아들이 마주쳐 무언가 대화를 나눕니다. 관객이 눈을 부릅뜨고 찾지 않으면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멀리서,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각자의 길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영화는 끝내 테이프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 저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침묵의 엔딩 크레딧을 올립니다.
불 꺼진 방에서 멍하니 검은 화면을 응시하다 깨달았습니다. 하네케 감독이 겨눈 카메라는 영화 속 범인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 팔짱을 끼고 안락하게 구경하던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요. "당신의 안락한 삶 뒤편에는 과연 어떤 거짓과 비겁함이 숨겨져 있는가?"라는 그 서늘한 질문이 비수가 되어 제 무뎌진 가슴을 깊게 찔러왔습니다.
<히든>은 재미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을 베어내는 면도칼이자, 결백이라는 허약한 성 안에서 잠들어 있던 어른들의 위선을 가차 없이 흔들어 깨우는 도덕적 심판대였습니다. 내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제 마음의 문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해묵은 기억의 테이프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품어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 여러분의 마음속에 봉인해 둔 '숨겨진 테이프'는 없으신가요?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혹은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부끄러운 과오나 상처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평온한 일상의 커튼 뒤편에 감춰두었던 여러분만의 솔직한 성찰과 생각을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