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세트장 한구석에서 길어 올린 세 가지 사유
- 내 삶의 완벽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무대 밖으로 밀어냈던 서글픈 경험
- 인생을 진짜로 살아내기보다 끝없는 예행연습과 통제에만 매달리다 흘려보낸 시간들
-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진 주인공이자 엑스트라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찾아온 담담한 해방
해야 할 일 목록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문득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어느 적막한 밤이었습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어 계획하고, 모든 상황을 내 의지대로 통제하려 아등바등 애썼지만 정작 손에 쥐어지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피로와 결핍뿐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이라는 연극의 어엿한 연출가인지, 아니면 타인이 짜놓은 각본 위를 갈팡질팡 헤매는 초라한 단역 배우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던 순간이었습니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공허함을 털어내려 서재 구석을 서성이다 불현듯 손이 닿은 작품이 바로 찰리 코프만 감독의 <시네도키, 뉴욕>이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서른 무렵의 저는, 거대한 폐창고 안에 실제 뉴욕을 그대로 본뜬 세트장을 짓고 수십 년간 연극의 리허설만을 반복하는 주인공 케이든의 광기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난해하게 얽힌 메타포와 비현실적인 전개에 당혹스러워하며, 그저 예술가의 헛된 과대망상을 다룬 기괴한 미로 같은 영화로만 넘겨버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사십 대의 길목에 서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와 매일 조금씩 닳아가는 육체의 유한함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금, 화면 속 케이든의 굽은 등과 창백한 얼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세트장이라는 안전한 통제구역 속으로 도망치려 했던 내 자신의 서글픈 자화상이었으며, 진짜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리허설만 거듭하다 나이 들어버린 어른의 뼈아픈 참회록이었습니다.
완벽한 연출을 향한 집착, 진짜 삶을 가두어버린 감옥
주인공 케이든은 아내와 딸이 떠나고 건강마저 무너져 내리자 거액의 지원금을 받아 거대한 창고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짓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배우를 고용하고, 자신을 연기할 대역 배우를 뽑고, 심지어 그 대역 배우를 연기할 또 다른 배우를 세우며 끝없는 복제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그에게 세트장은 상처받지 않고 모든 변수를 스스로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습니다.
그 강박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낯 뜨거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내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머릿속에 수많은 시나리오를 세우고 주변 사람들을 내 기준에 맞추려 들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상처받지 않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계산된 표정을 짓고, 실패가 두려워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진정한 결단을 미루기만 했던 제 비겁함이 창고 안에서 헤매던 케이든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살아 숨 쉬는 진짜 순간들을 박제하여 스스로를 거대한 무덤에 가두는 일과 같다."
리허설이 길어질수록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케이든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갑니다. 단 한 번도 본 공연의 막을 올리지 못한 채 준비에만 매달리다 청춘과 소중한 인연들을 모조리 떠나보낸 그의 비극은, 준비만 하다가 인생의 소중한 계절들을 속절없이 흘려보낸 제 지난날의 게으른 완벽주의를 서늘하게 꼬집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집을 사는 여자, 그리고 흘려보낸 사랑의 기억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처연한 인물은 언제나 벽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타오르는 집을 덜컥 사버리는 헤이즐입니다. "불타서 죽을지도 몰라요"라는 중개인의 말에 그녀는 "어차피 끝은 다 그런 것 아닌가요"라며 덤덤하게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집이 불타고 있음을 알면서도 연기를 마시며 커피를 마시고 빨래를 널어 말리는 그녀의 기괴한 일상은, 언젠가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인간의 숙명을 상징합니다.
상처가 두려워 문을 닫아걸었던 밤들의 대가
케이든은 그런 헤이즐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불타는 집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수십 년을 맴돌기만 합니다. 상처받을까 봐, 파멸할까 봐, 연극의 완벽함을 해칠까 봐 주저하는 사이 세월은 무정하게 지나가고, 마침내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온기를 나눈 날 아침 헤이즐은 연기에 질식해 세상을 떠납니다.
차가워진 헤이즐의 곁에서 오열하는 케이든을 보며 저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온전히 열지 못하고, 상대방이 내 삶을 흔들어놓을까 봐 거리를 두었던 제 수많은 이기적인 망설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랑이란 불길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용기인데, 안전한 관람석에 앉아 불꽃놀이 구경하듯 살아온 제 비겁함이 뼈아프게 저려왔습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마침내 내려놓은 주인공의 자리
말년에 이르러 케이든은 결국 자신이 연출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원래 청소부 엘렌을 연기하던 배우 밀리센트에게 연출권을 넘겨줍니다. 그리고 자신은 청소부 복장을 입은 채 밀리센트의 무전 지시를 귀에 꽂고 먼지 쌓인 세트장 바닥을 묵묵히 쓸기 시작합니다. 평생 세상의 중심이자 고독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군림하려 했던 그가, 마침내 이름 없는 엑스트라의 위치로 내려앉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독백은 제 무뎌진 영혼을 단숨에 흔들어 깨웠습니다. "세상에 단역이란 없어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이고, 각자의 지독한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속을 가로막고 있던 지독한 외로움의 둑이 터지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만 이토록 유별나게 불행하고, 나만 세상의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낯선 행인도,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넘기던 직장 동료도 모두 각자의 거대한 비극과 씨름하며 하루를 버텨내는 고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내가 남의 인생에서는 한 줄의 엑스트라에 불과하듯, 나 역시 특별한 영웅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그 지극히 평범한 진실이 비로소 제게 깊은 구원을 안겨주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폐허가 된 세트장 벤치에서 다른 배우의 어깨에 기댄 채 "이제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라고 중얼거리는 노년의 케이든에게 무전기는 차분하게 명령합니다. "죽어요(Die)." 그리고 화면은 하얀 정적으로 덮입니다. 완벽한 연출의 끝은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뿐이라는 그 먹먹한 결말 앞에서 저는 한참 동안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엔딩 자막이 오르고 불 꺼진 방에 홀로 앉아 굳어버린 어깨를 가만히 쓸어내렸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분노하고, 인생이라는 무대를 완벽하게 지휘하려던 제 조급함을 이제는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연습 없이 곧바로 본 무대에 던져진 서툰 배우들입니다. 비록 실수투성이에 서투른 엑스트라일지라도, 매 순간 내 곁의 온기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겪어내는 것만이 이 부조리한 세트장을 건너가는 유일한 길임을 <시네도키, 뉴욕>의 서늘한 여운을 통해 배웁니다.
💬 여러분은 삶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계신가요?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려다 정작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을 놓쳐버렸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혹은 언제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찾았던 여러분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댓글로 편안하게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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